전승계도

350년 역사와 함께 해온 경주교동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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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씨가문의 비주

교동법주를 처음 빚은 사람은 현 기능보유자인 최경(崔梗)의 10대조인 최국선이다. 그가 궁궐에서 임금님의 수랏상을 돌보고 장을 담그는 염장을 관장하는 사옹원의 참봉직에 봉해진 것은 조부인 최진립(崔震立)장군의 후손, 즉 충절을 다한 충신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최진립장군은 25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과감히 근방의 젊은이들을 모아 왜적과 싸워 적을 물리쳤다. 무과에 급제한 후 수군첨절제, 경원도호부사, 공조참판 등의 요직을 거쳤다. 그의 청렴하고 결백한 마음가짐과 생활은 만인의 모범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도 69세의 최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남한산성 부근에서 온몸에 화살을 맞으면서도 용감히 싸우다가 화살이 고슴도치의 털같이 꽂힌 채 숨을 거두었다. 인조는 교시를 내려 최진립에게 병조판서를 추증하고 아울러 정무(貞武)라는 시호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그의 출신인 경주에 정표하게 했다. 그 후 숙종은 경주에 있는 그의 사당에 숭열사우(崇烈祠宇)라는 사액을 하사하고 정무공의 손자인 최국선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사옹원의 참봉으로 봉사하게 하였습니다.

최국선으로부터 이어지는 법주 빚는 방법은 둘째 아들 의기(義基)의 후손들에 의해 최부자댁에 시집 온 며느리들에게 물려져 3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가문의 비주로 전통을 계승하여 왔다.
경주 최씨 사성공내파(司成公內波)25세(世)기영(祈永)대에 와서 월성 이조에서 현재 경주 교동으로 이사를 했다. 기영은 아버지 언경(彦瓊:24世)과 두아들 세린, 세구(世麟, 世龜:26世)를 데리고 현재의 교동법주 기능부유자인 최경이 살고 있는 경주시 교동 69번지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세구(세구(世麟, 世龜:26世)의 후손은 물봉진사로 유명한 만선(27世), 현철(28世), 종(29世), 경(30世), 홍석(31世)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까지 경주교동법주의 맥을 잇고 있다. 300년 넘게 이어온 경주교동법주는 1986년 11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 86-다호로 지정되었다. 그동안 경주 최씨 문중의 다른 집에서는 최씨가문의 사정과 정부시책 등으로 법주의 양조법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하고 경주교동의 이 집안에서만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